어제 나딘과 함께 올리브 수십알과 마티니 한 병을 거의 다 비웠다. 그래도 숙취 하나 없이 멀쩡하게 잘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나딘네에 갈 차례.. 37도, 하루 중 가장 더울 때 나딘네에 도착했다. 어제 이 온도에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올라 우리집까지 왔던 나딘.. 시뻘건 얼굴이 백번 이해갔다. 원래 다섯시에 그릴을 시작한다고 했지만 내가 도착한 여섯시까지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먼저 나딘네에 들어가 귀니와 의자 위에 퍼진 미숑에게 인사를 하고 잠깐 열을 식혔다. 인간적으로 너무 더워. 그 집엔 에어컨도 심지어 선풍기도 없다. 털옷을 입은 불쌍한 미숑. 그래도 밖에 다시 나오니 약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딘네서 자란 포도를 맛 보는 사이 그릴 준비가 착착 되어갔다. 언제나처럼 그릴마스터인 졸리가 숯에 불을 붙이고 나머지 사람들이 접시와 음료 등을 열심히 날랐다. 오랜만인 그 누구냐 항상 이름을 까먹는 그 친구, 시몬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같이 열심히 야채꼬치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손도 안 씻고 만들었네.. 드러워. 레리와 버섯도 꼬챙이에 길게 꽂고 있는데 처음 보는 친구가 왔다. 하비라했다. 그리고 뒤이어 본인이 아는 미친 친구가 하나 더 온다 했는데 그 친구 이름은 레즈비시?레즈비쉬? 였다. 둘다 나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었고 그 중 레즈비시라는 친구와 꽤 길게 대화를 나눴다. 지금 6년 째 독일에서 거주중이고 석사를 마친 뒤 박사 과정 중에 있다고 했다. 내가 미술 공부를 한다고 하니 큰 관심을 보였다. 하비는 대뜸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한 번 맞추어 보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서 나딘과 귀니가 하비 보고 덫에 걸렸다며 큰일났다고, 너가 어떤 대답을 하든 네 스테레오타입이 바로 드러날거라고 양옆에서 신이나서 바람을 잡았다. 하비는 난감해하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국이라고 대답했다. 한 번에 맞춰서 재미없었다..
그렇게 잘 먹고 있다가 갑자기 귀니가 날 부르더니 시몬 칭찬 좀 한국말로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완전 뜬금없이. 뭔가 싶었는데 시몬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나와 나딘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언어인지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 했단다. 어이가 없어서 그냥 아무말이나 해줬다. 넌 참 키가 커. 머리 멋있다. 순간 나딘 빼고 다들 멍하니 말 없이 그걸 지켜보던 장면이 너무 웃겼다. 진짜 이상하고 웃겼던 순간.
레리에게 곧 이사 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제냐고, 우리가 차도 있으니 도와주겠다고 바로 말해주었다. 공식 입주일은 평일이라 회사에 다니는 레리에게 주말로 조정해보겠다고 했더니, 나딘이 만약 안돼도 괜찮다고, 일 끝나고도 시간이 있으니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해서 거의 울 뻔 했다. 정말 좋은 친구들.. 내가 집들이파티 때 한국 음식 해주겠다 했더니 동시에 맞춘 것처럼 좋다고 대답했다. 근데 얘길 들어보니 여기선 집들이를 이사 당일에 한다고 해서 그냥 맛있는 피자 시켜먹기로.. 나딘이 독일 전통대로 이삿날 굉장히 맛있는 빵과 소금을 선물해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해가 지고 다들 집으로 돌아갈 때 쯤 옆 집 고양이 에디가 놀러왔다. 현관 앞에서 들어갈까말까 눈치보다가 나딘의 블로킹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다. 나도 슬슬 집에 가려고 나딘과 레리와 인사하는데 레리가 포옹하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나를 따라하며 웃는다. 나도 몰랐는데 애들과 작별 인사할 때 항상 엉덩이를 슬쩍 뒤로 빼고 포옹했나보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포옹하는게 아직 어색하다 했더니 나딘이 갑자기 숨이 막히도록 나를 껴안아서 너무 깜짝 놀랐다. 아무리 더워도 사랑이 더 크다면서. 그러면서 손하트를 마구 발사했다.
인사를 마치고 마당 밖에 나오니 에디가 바로 근처 길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다가가서 쓰다듬어 주니 바로 발라당 누워 골골거리길래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차가 와서 급하게 작별인사하고 집에 왔다. 나딘이 마당에서 따 챙겨준 포도송이는 잊지 않고 냉장고에 잘 넣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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