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자르르 2021. 11. 3. 03:21

학기가 시작되고 서로 바쁜 와중에 남자친구가 학기 중 퍼포먼스위크를 맞아 잠깐 시간을 내 독일에 놀러왔다.
월요일 저녁에 공항에 도착해 밤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날 계획을 세웠다.
원래 수업이 하나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휴강을 해버리고 그 날 하루를 잡아 집 근교로 기차여행을 하기로 했다.
뤼데스하임이라는, 나도 두 번정도 방문해본 강가의 작은 도시이다.

 

내가 시킨 커피는 원두를 직접 고를 수 있었다

기차를 타러 중앙역에 가기 전 먼저 집 근처 작은 로스터리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했다.
워낙 작은 카페라 코로나 때문에 실내 자리는 문을 닫고 카페 앞 야외에 작은 천막을 쳐 테이블 몇 개 정도만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에어로프레스로 내린 커피를 마셔보았다. 마시는 동안 옆에서 커피 마스터인 남자친구가 에어로프레스라는 기구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쭈욱 해줬는데 기억에 남는 사실은 요즘 굉장히 핫한 방식이라는 것과 가장 깔끔한 맛을 낸다는 것이었다.

 

갈수록 좋아지는 날씨를 감상하는 것에 큰 방해가 되던 더러운 창문

 

극악의 배차간격 중 운 좋게 마지막 기차까지 여유롭게 탔다.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의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들뜬 마음은 아니었는데,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 위치가 바뀌면서 구름도 서서히 개고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말소리가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기차에서 나란히 앉아 같이 노래를 들으며 평화롭게 이동했다.

 

정말 아름다웠다


도착하니 그림자가 벌써 많이 길어져 있었다.

리프트를 타며 아래 포도밭과 강 경치를 한 눈에 보려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시설이 공사중이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남자친구의 목적이었던 사진들을 찍기 위해 포도밭이 펼쳐진 오르막 길 초입만 산책겸 살짝 다녀오기로 했다.

그날따라 길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고 굉장히 평화로웠다. 걸으면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

돌아오기 전 우리가 걷는 길 양 쪽을 막고 있던 풀숲이 사라지고 시야가 확 트이며 강이 한 눈에 보이는 지점이 나왔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너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광야로 걸어가는 중


그렇게 기분 좋게 돌아와 식당이 모여 있는 골목에서 고심 끝에 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남자친구가 독일식 음식을 먹고 싶다 해서 부어스트 하나와 슈니첼 하나를 주문했다. Vorspeise로는 차치키를 먹었다.

 


차치키를 찍어 먹게끔 같이 나온 바게트가 정말 맛있었다. 갓 구운 듯 따끈따근하고 바삭해서 금방 먹어 해치우니 빵을 리필해주었다. 아쉽게도 그 빵은 맛도 그저그렇고 질긴데다 차가워서 먹다 남겼다.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는 것 치고 시도를 많이 한다

남자친구가 시킨 부어스트 요리에 소세지가 외롭게 하나만 놓여 있는 것이 웃겼다. 특히 남자친구는 예상 못했다는 듯이 더 당황스러워했다. 요리들은 뛰어나게 맛있진 않았지만 좋은 날씨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해가 거의 져서 주변 가게들이 아기자기한 조명을 켜두었다.

 


충분히 아름다운 골목을 걸으며 역으로 돌아가려는데 우리가 지나가는 길을 두고 양옆에서 마녀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마주쳤다.
두꺼비 게임처럼 멀리 서있는 마녀에게 오늘 무엇을 먹을 거냐고 여러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외치니 마녀가 시금치 요리를 먹을 것이라고 대답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우리가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추어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동화같아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곤 어쩌다 기차를 놓칠 위험에 처해서 역까지 둘이서 숨이 차도록 뛰었다. 하필 또 어플로 표 구매가 불가능해져서 현장에서 기계로 구매하느라 정말 출발하기 직전에 겨우 탔다. 감사하게도 표를 들고 두리번 거리는 우리에게 저 문 열려 있는 기차를 타라고 역무원분이 알려 주셔서 레일을 가로질러 급하게 올라탔다.


마지막까지 긴장감넘치는 기차여행을 덕분에 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역시 여러 곡들을 같이 들으며 그곳에서 찍은 수 많은 사진들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