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0
왠지 어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는 약속인데 갑자기 우리집으로 온다 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오늘 낮에 연락이 왔다. 약속 시간 2시간 전에, 집에서 나와야 할 것 같다(?)는 요상한 말과 함께 한시간 늦춰서 이 곳으로 오겠다고.
다행히 전 주에 이미 나딘이 왔다갔던터라 방이 평소보단 깨끗한 상태였지만 널어진 빨래,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을 얼른 수습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간단히 했다. 날씨가 오랜만에 흐렸다. 다섯시쯤 창문 밖 자전거 주차 구역에서 갑자기 소리가 났다. 직감적으로 나딘인 걸 알아차리고 바로 전화를 받아서 현관으로 튀어나갔다. 방으로 올라오는 짧은 순간에 나딘은 왜 갑자기 약속을 변경했는지 모두 설명해 주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귀니와 싸운 것, 두 번째는 미숑이 갑자기 다시 아파진 것, 마지막으로 참깨를 볶다가 태워 먹은 것... 마지막 이유를 말하면서 나딘은 '평소라면 별 일 아니지만 앞의 두 가지 일 때문에 눈물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그 집에서 잠깐 나와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도 그 기분을 알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딘은 평소처럼 집에 들어오자마자 물 한 컵을 마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창가에 있던 요가매트를 가져다 깔고 바닥에 앉았다. 나는 귀니와 싸운 이유에 대해 묻고 대답을 들으면서 커피를 내렸다. 싸운 것은 미숑에 관한 일 때문이었다. 현관을 열어두면 밥을 먹다가도 뛰쳐나가는 미숑 때문에 나딘은 귀니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미숑이 밥을 먹는 동안에는 문을 열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귀니는 부탁을 듣지 않고 문을 여는 바람에 밥을 잘 먹던 미숑이 나가버린 것이다. 과거에 크게 아팠던 미숑에게 식사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나딘네에 놀러갔을 때도 미숑이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을 때마다 나딘은 굉장히 좋아했다. 한참 아팠을 때에는 밥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고 했으니.. 귀니가 왜 문을 열었는지 묻자 나딘도 별 이유 아닌 것처럼 말했다.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본인의 부탁을 중요하게 듣지 않은 귀니에게 나딘은 화가 났을 것이다.
커피는 저번 것보다 훨씬 맛있었지만 좀 연하게 내려졌다. 나딘은 그라인더 클릭 수를 하나 더 낮춰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곤 갑자기 다음 주 계획에 대해 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니가 집을 비우는 주말에 그 집에서 자고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나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머물지, 아니면 하룻밤만 머물지 물어보는데 머리가 복잡해져서 대답을 일단 미뤘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하루만 있다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일요일에 귀니가 돌아온다고 하니 둘만의 시간을 또 보내도록.
여튼 다음주 방문 때에 같이 한국음식을 해먹기로 했다. 잡채는 저번에 말을 해놨었고, 또 무슨 음식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나딘이 본인이 보는 먹방 유튜버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한국인 유튜버였는데 나딘이 보여준 영상에서는 마라소스에 요리한 다양한 버섯들을 먹고 있었다. 나딘은 마라를 먹어본 적 없다고 했지만 너무 맛있어 보인다고, 먹어보고 싶다고 하길래 그럼 그날 요리해서 먹어보자 했다. 마라 얘기가 나와서 내가 샹궈를 먹어본 적 없는 나딘에게 그것을 직접 해주겠다고 했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넓적당면도 그 유튜버가 자주 먹던 것이라서 너무 궁금하다고 꼭 먹어보고 싶다고.. 그래서 금요일날 같이 아시아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딘네로 가기로했다. 떡볶이와 감자전 재료도 사야한다..
영상을 같이 보다가 둘 다 너무 배고파져서 얼른 레베에 장을 보러갔다. 샐러드 바에서 큰 통으로 가득 담고, 냉동피자와 맥주도 사왔다. 나딘은 다음 날 아침부터 근무라 한 병만 골랐다.
부엌에서 옆집 애의 도움(?)을 받아 피자를 오븐에 잘 구워다 방에 갖고 들어와 먹기 시작했다. 나딘이 좋아하는 한국드라마를 틀어놓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드라마 중간에 제사 장면이 나왔는데, 나딘이 가장 좋아하는 약과가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바로 옆에서 반응을 보였다. 나딘은 제사 음식을 다 버리는 줄 알고 너무 아까워 했다. 제사 끝나면 다같이 나눠 먹는다고 알려주니, 그럼 자기가 저기 가서 약과를 다 먹고 올거라고 하면서 햄스터처럼 약과먹는 제스처를 갑자기 취했다. "저 외국인 누구야?" 하고 연기하니 나딘이 뒤로 넘어가게 웃었다. 나도 순간 너무 웃겨서 피자 뱉을 뻔 했다.
그렇게 한참 웃고 떠들다가 열시쯤 나딘이 갔다. 이유 없이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다가 해가 뜨기 시작할 때 겨우 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