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베 - 5
둘째 주 화요일엔 소피를 도와 일찍부터 숙소를 나섰다.
독일어를 거의 못하는 소피와 메탈 작업 도움을 주시기로 한 분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기로 한 것.
10시쯤 작업실에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해야 할 일들을 정하는데, 소피가 원하는 기계가 없어 작업 여건이 안된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소피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오던 피터라는 주민 분이 소피가 필요한 기구들을 갖고 있다는 희소식이..!
잠시 후 찾아온 피터 아저씨를 따라 시골에서나 보던 수레를 소피가 끌고 피터 아저씨의 집으로 다 같이 향했다.

나와 소피가 닭을 보고 놀라자 피터는
"내가 베지테리안인게 쟤들한테는 참 다행이지"
라며 껄껄 웃었다.

예술가이자 영어 선생님인 피터 아저씨의 작업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소피가 필요한 도구를 모두 수레에 담아왔다.
천하장사&균형감각 맥스 소피는 혼자서 그 무거운 짐들을 혼자 끌고 갔다.

작업실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더 필요한 것들을 정리했다.
보호안경과 장갑이 필요했다.
넷이서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봐도 찾을 수 없던 물건들..
결국 카티의 도움을 받아 Kulturhof라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이곳은 여름에만 쓰이는 곳으로, 회의실 같은 공간과 넓직한 공연장 그리고 여러 재료를 모아두는 창고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겨울엔 난방 문제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참 아쉬웠다.


쿨투어호프 중간에 있던 화장실 자리에는 곧 피자 화덕이 들어온다 했다.
피터 아저씨가 짓는다고 ...

완벽하진 않지만 보호경과 그나마 두꺼웠던 장갑을 찾았다.
그 사이 소피는 여기저기 창고를 뒤져 재료로 쓸 오래된 철 기둥을 몇 개 찾아왔다.

돌아와서 이런저런 스킬을 간단히 익히는 소피를 구경했다.
떠나기 전 소피의 권유로 나도 검은 마스크를 쓰고 철기둥 납땜(?)도 해봤다. 아찔하고 재밌었음.

칼베의 돌들을 그리고 있던 중 건너편 방 루시네가 찾아왔다.
잠시 몇 분만 내줄 수 있냐며, 본인의 그림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림모델 경력 수십 시간인 나는 15분 동안 꿈쩍 않고 완벽한 모델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순간 귀가했다.
방 안에서 쉬다가 부엌이 소란스럽길래 나가봤더니 소피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팀과 카티가 그 옆에 앉아 각자 노트북으로 무언가 하고 있길래 나도 내 것을 가지고 자연스레 착석했다.
그리고 칼베편 블로그를 쓰고 있을 때 팀이 보고 눈을 번쩍이며 갑자기 카카오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리고 첫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 주었다. 너무 웃긴 상황. 한참 웃었다.

이날은 소피가 라자냐를 요리했다.
큰 냄비 두 개에 재료들을 쌓아 오븐에 넣으려 했는데 남은 하나가 작은 오븐에 들어가질 않는 것이다.
카티가 팔을 걷어붙여 좀 더 작은 냄비를 가져와 뒤집어 옮기는 작업을 했다.
예쁘게 쌓아 올린 모습은 좀 망가졌지만 그래도 꽤 성공적이었다.

아 맞다. 저 못생긴 식탁보는 관리자분의 부탁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다음날 작업실에 가기 전 마트에 들렀다.


작업실을 가던 중 다른 색의 고양이를 같은 장소에서 발견했다.

전에 만난 흰검이에 비해 경계가 심해서 일부러 멀리 돌아갔다.
뒤돌아보니 나를 빤히 보고 있던 녀석

커피와 잔을 들고 작업실에 직접 찾아와 준 팀과 잠깐 수다를 떨다가 소피네 방에 놀러 갔다.


다가오는 토요일의 마지막 전시를 위해 막판 스퍼트를 달렸다.
2주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보다 더 오래 머무는 친구들이 2주면 돌아간다는 이야길 듣고 너무 아쉬워하는 모습에 내가 더 아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