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베 - 4
토요일이 되었다.
느긋하게 일어나 요거트+견과류를 아침으로 먹고 갤러리 전시가 오픈하기 전에 작업실에 슬슬 걸어갔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부르는 카티의 문자...
갤러리 전시 오픈 전 정리를 부탁하여 나도 거의 작업실 자리에 앉았다가 바로 일어났다.
도착해서 딱히 급하게 해야할 것은 없길래 설렁설렁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음료와 케이크를 포함한 다과까지...
친구들과 이것저것 들고 노라의 오프닝 연주를 감상했다.

연주와 노래까지 너무 좋았다.
3곡 정도가 끝난 후 참여 작가들이 앞에 쭈르륵 서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며 본격적인 전시의 시작을 알렸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사이로 아름다운 초콜릿 색 털을 가진 마야라는 큰 개가 눈에 띄었다.
간단히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하자 좀 킁킁 거리며 막 핥더니 바로 발라당 배를 보여줬다.
주인 말로는 만져달라 하는 것이라고...
여기저기 손으로 쓰다듬어주며 마야의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도 그렇고 마야도 서로를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우리 둘의 사진도 막 찍어 가시고..
원한다면 같이 산책을 나가자고 제안도 해주셨다.
그때는 바로 좋다고 했는데 전시가 끝나니 따로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네...
여하튼 대화가 끝나고 가려고 하자 가지 말라는 식으로 본인의 다리로 내 팔을 잡길래 너무 귀여워서 좀 더 쓰다듬다가 나왔다.
전시관에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왠지 다들 지친 모습으로 바닥, 의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가 저녁 계획을 세웠다.
전시 오픈 기념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오늘은 요리하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그전에 다들 낮잠이 필요한 상태라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전보다는 충전된 상태로 약속 시간에 맞추어 숙소 안에서 만났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Dubronik-Kalbe라는 크로아티 식 레스토랑.
나는 큰 맥주와 함께 옆에 앉은 팀과 루꼴라 피자, 체바치치를 시켜 나누어 먹었다.


결론적으론 잘 한 선택이었다.
평소에 피자를 시키면 반 쯤 먹었을 때 물려서 괴로워했었는데, 두 음식을 번갈아 먹으니 맛의 균형이 잘 맞았다.
한국에서는 친구들끼리 식당에 가면 대부분 여러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곤 했지만 독일에 와서는 다들 각자 시킨 요리만 해치워서 좀 아쉬웠다. 내가 원래 양이 많은 사람도 아니어서 차라리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게 훨씬 즐거운 편이라...
여하튼 이번엔 오랜만에 다양하게 잘 먹고 왔다.
그렇게 한참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식사 후엔 슈납스도 서비스로 나와서 기름진 입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몇 친구들과 남은 수다를 떨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컵라면을 열었다.

셋째 날인가, 저녁식사 후 다 같이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술래가 주제를 정하고 본인의 눈을 가린 뒤 1부터 10점 사이 임의의 숫자가 정해지면 다들 돌아가며 그 주제 속 점수에 맞는 개인적인 얘기를 꺼낸다.
마지막에 술래가 모두의 이야길 듣고 점수가 몇 점이었는지 알아맞히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중 한 테마가 '요리'였는데
4점으로 점수가 정해졌다.
난 칼베에서 매일 아침 먹던 요거트+견과류를 말했고 게임이 끝난 후 소피가 그것에 대해 정말 안타까워했다.
오프닝 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잠깐 대화를 할 때 소피가 말했다.
네가 별로 안 좋아하는 요거트 견과류를 매일 먹는 건 좀 '고문'같아 보인다고,
내일 아침엔 여기 남은 케익을 그냥 먹어보라고.
그 말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이날 아침엔 자연스럽게 컵라면으로 손이 갔다.
전날 맥주를 좀 많이 마셔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는데 속이 아주 시원하게 풀리며 잠깐이지만 정말 행복했다..ㅋㅋㅋ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작업실로 출발
가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가 날 불러 세워 '혹시 아르메니아에서 왔니?'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그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냐며, 그 둘을 오늘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본인의 번호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달라 길래 알았다고 하고 헤어졌다.
( 나중에 아르메니아 친구들이 그 아주머니의 정체를 몰라 한참 우왕좌왕했다. 겨우 신원을 알아내고 내 폰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매번 아주머니가 통화 연결되자마자 내 말을 듣지 않고 외운 영어 대사를 계속 읊어서 좀 난감했다..😅 여튼 그들을 잘 만나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너무 추운 날씨에 총총거리며 걷고 있던 와중, 부들부들 떨던 나와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여유롭게 창틀에 앉아 있던 고양이를 보았다.
안 추울까..

추운 만큼 하늘은 맑았다.

소피와 릴릿의 작업실에 놀러 갔다.
이 둘은 2층 가운데 서로 벽을 두고 작업실이 있었다.
전에 한 번은 소피가 전에 식사 중 본인 작업실 벽에 나치 크로이츠하켄 무늬의 벽지를 발견했다고 했는데 의견이 맞다/아니다로 나뉘었다.
이 날 직접 보기 위해 소피네를 찾아간 것이다.
결론은 아직 안 났다... 궁금하다 뭐가 사실일까.


한참 노닥거리다가 다시 돌아왔다.

해가 떨어져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그림을 제대로 보며 그리기 어렵고 온도도 급하게 떨어져서 바로 퇴근했다.
이 날은 노라와 노라의 친구로 칼베에 방문한 안드레가 파스타를 해주었다.
식사 후엔 갑자기 좌뇌우뇌 분리 테스트를 시작하더니 네모네모 제스처에 빠져 손가락으로 수없이 많은 네모를 서로 그리다가 잠들었다.

이날은 눈도 오고 왠지 밖에 나가기가 싫어서 집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부엌에 앉아 차분하게 이런저런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떴다.
뜨뜻하게 등으로 햇빛을 맞으며 한참을 더 있었다.

이 날은 리동이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밖 부엌이 뭔가 소란해 나가 보았더니 혼자 벌써 야채 손질도 끝내고 고추기름도 만들어놓은 능력자 요리사...
나도 옆에서 돕겠다는 명목 하에 알짱거리며 구경했다.


넋 나간 듯 보며 중간중간 돕다 보니 어느새 볶음 면 요리가 완성.
파스타 면은 전날 노라가 요리하고 남은 것을 사용했다.

식사가 끝나고 정리를 하던 중 소피가 주방 구석 바닥에서 이상한 감자 한 알을 발견했다.
뿔(?)이 잔 뜩 난 조그마한 감자...
너무 기뻐하며 우리의 열쇠걸이에 있던 꼬챙이에 감자를 꽂아버렸다.

해리포터 퀴디치 시합에서 날개 달린 금색 공의 독일식 이름이라 한다.
조금 삐죽빼죽한 날개가 달린 감자 공 슈나츠...
우리의 마스코트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주방 벽지 색을 빨간색 & 하얀색 조합으로 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걸까?